헤지펀드란 무엇인가, 헤지펀드의 역사
- 건강·웰니스/다이어트TIP
- 2015. 10. 4. 13:46
헤지펀드라는 용어는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사회학자이자 작가였던 존스는 1949년에 최초의 헤지펀드를 시작했으며, 자신의 투자스타일과 운용, 그리고 조직 구조를 바탕으로 그 용어를 정의하였다. 헤지펀드의 개념과 매니저에게 보상을 주는 방법과 공식 등을 고안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헤지펀드의 역사와 헤지펀드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따질 때 사람들은 항상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를 생각한다.
존스가 그의 펀드를 시작한 이래 헤지펀드 업계는 상당히 많이 변화했는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가 창조한 헤지펀드에 대한 정의이다. 존스는 헤지펀드란 제너럴 파트너(펀드매니저)에게 유한책임의 파트너의 돈으로 번 이익에 대한 지분을 주도록 짜여진 합병회사(유한책임의 파트너십)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헤지펀드는 항상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항상 일정한 숏포지션을 수반한다. 존스는 그의 투자기관을 ‘헤지된 펀드(hedged fund)'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롱포지션과 숏포지션을 결합하여 시장의 변동으로부터 보호되는 헤지된 펀드라는 의미이다. 월스트리트의 큰 기관들이 ’d‘를 떼고 쓰는 관행에 따라 ’헤지펀드(hedge fund)‘가 된 것이다.
헤지펀드란 무엇인가, 헤지펀드의 역사
이익을 나누는 방법은 헤지펀드의 수수료 체계에서 정의된다. 존스의 시나리오 하에서 매니저는 포트폴리오 이익의 20%를 받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그들은 승리자가 되어야 할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최근 헤지펀드 매니저는 20%의 성과보수에 1∼1.5%의 관리보수를 추가했다. 수수료를 추가하는 것을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불명확하나 이는 곧 월스트리트의 관행이 되어 다른 사람들도 관리보수를 추가했다. 이 수수료는 기본적으로 매니저에게 약간의 봉급을 줄 뿐 아니라 펀드 운용 유지비를 충당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존스의 회사는 파트너에게 관리보수를 부과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존스의 모델은 상승장과 하락장 모두에 작동하였으며, 그렇게 되도록 구성되었다. 20년 동안의 운용기간에도 그 시스템은 잘 작동했으므로 존스의 펀드는 결코 연간 손실을 내지 않았다. 손실을 낸 것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의 하락장에서였다.
헤지펀드 산업은 너무나 크게, 너무나 빨리 성장해왔다. 실제로 많은 뮤추얼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 애널리스트가 자신의 헤지펀드를 시작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헤지펀드라고 부르는 회사를 세우고 그 업계에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헤지펀드 매니저라고 자칭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자칭 헤지펀드라고 하면서 헤지하지 않는 회사들은 매우 비싼 뮤추얼펀드에 불과하다.
많은 매니저들은 아직도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상승장-하락장 모두에서 리스크를 제한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도록 롱-숏 포지션을 가지는 전통적인 존스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헤지펀드 산업의 창시자,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
1949년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는 이후에 ‘헤지펀드’라고 알려지게 된 것을 처음 시작하였다. 그의 기본적인 투자전략은 시장이 그에게 불리하게 바뀔 때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서 롱-숏을 레버리지와 결합하여 사용한다는 것이다. 존스는 월스트리트의 위대한 트레이더 및 브로커들의 방법을 배우면서 당시에는 극히 적은 사람들만이 하던 헤징(hedging)이라는 개념에 기초해서 투자한다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고안하였다. 마침내 그는 49세의 나이에 3명의 파트너와 함께 헤지펀드를 출범시켰다.
“많은 시장 애널리스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심은 시장의 내부적인 특성이고, 그들은 하락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예측력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매일매일 주식시장 자체가 만들어내는 통계자료를 연구한다. 정교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 구성되고 해석된 이런 데이터들은 20개의 주식시장 서비스만큼 많이 팔리고 있고, 수백 수천 명의 개인들이 독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증권사는 이들 데이터를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자료의 사용자들이 자료를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영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펀드에 대한 존스의 모델은 매우 단순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마켓타이밍보다는 주식선택에 집중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레버리지와 숏세일(공매)을 사용했다.
헤지펀드를 발전시키는 것 이외에 존스의 조직은 브로커가 아이디어를 주는 것에 대한 보상기법을 완성시켰다. 그 회사가 노이버거 베르만 증권사를 통해 주문의 대부분을 실행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브로커에게는 보상을 했다. 브로커가 존스 회사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만약 그 아이디어를 매니저가 사용한다면 그 주문이 어디서 실행되든 관계없이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브로커들은 알았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느냐에 관계없이 그에게 수수료의 절반을 주곤 했다. 그 당시는 그 교환에 대한 대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의심도 없이 그렇게 했고, 그것은 그들에게 완전히 정당한 것이었다.”
존스 조직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을 해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매니저의 성과가 나쁘다면 그는 단지 관리할 돈을 더 주지 않고 서서히 자금을 빼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했다. 그러면 결국 그 매니저는 떠나야만 했다.
존스는 헤지펀드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1. 항상 숏을 쳐야 한다.
2. 항상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3. 매니저는 모든 이익의 20%를 수수료로 받는다.
존스는 공격적으로 매수할 주식을 골라내고, 또한 숏으로 시장의 변동을 중립화시킴으로써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반면, 엄청난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존스의 펀드는 항상 시장의 하락에 대응하여 헤지를 할 수 있도록 많은 숏포지션을 유지했고, 그것은 하락 위험을 어느 정도 막아 주었다. 그 펀드의 과거 실적자료를 완벽하게 계산하는 것은 펀드의 운영과 투자자의 비밀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1977년까지 헤지펀드 업계는 20억 달러가 넘는 데서 대략 2억 5천만 달러로 자산규모가 급감하였으며,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헤지펀드라는 개념은 낡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시장과 관련된 모든 일들처럼 헤지펀드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사이클은 곧 호전되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이르러 헤지펀드 업계는 바닥을 쳤지만 1990년대에 헤지펀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늘날 주식의 롱과 숏의 결합은 월스트리트의 생초보들도 잘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30년 전에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